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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알리미(동네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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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명소]아영면에 있는 아막성
강상민 | 2022-06-24 | 조회 1679

안녕하세요? 동네작가 강상민입니다.

오늘은 신라양식의 성곽인 아막성에 대하여 포스팅하고자 합니다.

7세기 초반 신라와 백제가 국운을 걸고 싸웠고, 전라북도 기념물 제38호인 아막성을 방문했습니다남원 장수군 번암면과 경계를 이루는 봉화산(해발919.6m)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 정상부(해발 697m)와 주변 계곡을 감싼 '포곡식 산성'은 둘레 640m의 자그마한 성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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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막성은 백두대간 치재에서 멀지 않은 복성이재 남쪽 산봉우리에 있으며 아막성은 가야와 백제, 신라 유물이 공존하는 보물창고입니다. 운봉고원에 있던 가야가 처음 터를 닦고 현재의 성벽은 신라 때 다시 넓게 고쳐 쌓은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 사이에 격렬한 영토전쟁이 벌어진 곳으로 신라에서는 '모산'이라고 불렀고, 성터는 대체로 사각형을 이루고 있으며 동··북쪽 테두리에 성문터가 있습니다. 북쪽 성벽은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는데 네모 반듯하게 다듬은 돌을 가지런하게 쌓아 정교함을 보여주며 북문터 부근에는 직경 1.5m의 돌로 쌓은 둥근 우물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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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막성은 소백산맥 동서를 관통하는 요충지이며 두 나라가 국운을 걸고 싸운 이유는 운봉고원과 장계분지의 거대한 제철산지를 차지하기 위함입니다. 철은 예로부터 국력을 상징하는 요체이며 전북 동부지역에서는 200여개소의 제철유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아막성 주변의 지형은 '동고서저'로 신라군은 서편에서 공격해오는 백제군을 막는데 유리한 입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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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에 걸쳐 대병 동원한 백제군 패전과 승리한 신라군은 서진할 수 있는 기틀 다졌지요

신라가 4성을 축조해 백제 영역을 먼저 침공하자 6028월 백제 무왕이 4만 병력을 동원해 4성을 공격했고 신라 진평왕이 정예기병을 동원해 방어에 성공했습니다.

아막성 전투에 승리한 신라는 백제가 소백산맥을 넘어 동쪽으로 진출하는 것을 저지하고 옛 가야 지배를 공고히 했고 백제가 대군을 동원해 아막성을 공격한 배경은 신라의 소백산맥 방어체계를 와해시킬 수 있는 군사적 비중이 높은 지역이기 때문이었죠.

신라의 아막성 전투 승리가 준 의의는 아래와 같습니다.

 

신라의 승리로 백제의 소백산맥 동쪽으로의 진출이 저지됐고 옛 가야 지배를 공고히 했다.

아막성 전투 결과 백제에게 심대한 타격을 줬다. 뿐만아니라 당분간 신라에 대한 공격 의지가 약화 됐다.

아막성 전투 승리로 신라는 전북 동부 지역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으며 운봉지역을 중심으로 한 소백산맥 서쪽 지역으로 진출이 본격화 됐다.

 

2019년 군산대학교 가야문화연구소에서 발굴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산성 내 북쪽 기슭 가장 하단부에서 동서로 긴 장방형의 집수시설이 조사되었고 집수시설은 두께가 얇은 흑운모 편마암을 가지고 수직으로 벽석을 쌓았는데 그 규모는 길이 950, 너비 710, 높이 250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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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석은 계단식으로 북쪽을 제외하고 사방에 도수로를 둘렀고 집수시설 동쪽에 목주열이 확인되었으며 유물은 집수시설의 자연 퇴적층에서 토기류와 기와류, 목제유물, 슬래그와 노벽편 등 다양한 동물유체 등이 출토된 바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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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동부권에는 가야뿐만 아니라 백제유적, 신라의 유적이 존재하고 있죠. 보석같은 지역입니다. 아끼고 잘 보존해서 후세에 물러주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포스팅을 마칩니다. 그럼 다음에 또 만나기를 고대하며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