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지역알리미(동네작가)

지역알리미(동네작가)

송동의 문화재(영동리 최락당)
강원 | 2022-08-30 | 조회 1257

안녕하세요 오늘도 송동의 요기조기 구석구석을 살펴볼 동네작가 강원입니다..

 

송동면 영동리 잿말로 가는 길 좌측 나지막한 언덕 사이로 건물 한 채가 있습니다

바로 손동마을 뒤편에 속하는 작은 동산의 허리를 휘돌아 동쪽으로 단아한 문을 

밀치고 들어서면 소박한 멋과 기품이 느껴지는 4칸 규모, 최락당을 아시나요?



image


남원 최락당은 조선시대에 설립된 초중등 교육기관이랍니다

최락당은 1600년 선조33년에 경주김씨 수은공 김충한의 5대손인 별제공 김익기가 

정자를 지어 처음으로 강의를 하였고 그의 아들 김유가 중수하여 

야은당, 혹은 쌍백당이라는 당호를 지어 거처한 곳입니다.


김익기의 증손인 김선이 선조때 성균관장의를 사임하고 향리에 낙향하여 집을 개수하여 

최락당이라 개칭하면서 초,중등 교육의 장으로서, 향약계의 모임 장소로도 쓰였습니다.



image


최락당은 정면4, 측면1칸으로 홀처마에 우진각지붕의 집입니다

현존 건물은 1600년에 처음 건립된 이래 18세기 말에 크게 중수되었으며

공간 건물 구성역시 단순하게 정리된 가옥구조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최락당의 빗살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서면 탁 트인 마루와 기둥 사이에 신흠, 권필, 천차로, 장경세 등 

여기서 묵고 간 조선 중기의 문인들의 한시 한판 35개가 보존되어 있으며, 최락당 현판 역시 김선의 손자가 썼습니다

천장에는 김선의 손자 김습이 16살 때 쓴 최락당이라는 글씨가 양각되어 있는데

한 글자가 1칸씩 차지할 정도로 굵고 힘이 넘치는 필체가 압도적입니다

처음 이곳에 가는 사람들에게 최락당은 숨은 보물 찾기와도 같답니다.



image


image


image


image




최락당의 향촌 교육의 결과로 400년 전부터 배출된 914가의 유현 100여 명의 후손들이 조직한 

향약 문화계가 현재까지 이어져 100여명의 후손들이 매년 음력 43일 선조 추모 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최락당 건물 역시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149호로 지정되어 경주김씨 취락당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후원에 있는 400여 년된 은행나무가 전해지고 있는데 이 나무는 김선이 성균관 앞의 은행나무 가지를 

꺾어다 심은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최락당은 400여 년동안 향촌 사회의 초,중등 교육을 담당했으며 정철의 문인으로 벼슬을 마다하고 

야인으로 살며 명필로 이름을 떨친 권필의 편액에 담긴 시구절에 


번잡한 속세 인연 모두 털어버리고 자연 속에 은거할 좋은 터를 잡았네.”


라고 읊을 정도로 지역 유지 및 향촌 선비들이 사랑했던 다목적 문화 공간이었습니다.



image



또한 봄과 가을에 선현 추모 행사를 진행하면서 유교와 유도를 논하고 전수된 향악을 실천하는 등 

보기 드문 현존의 향촌 사회 교육 기관입니다.


 

이제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풍요로운 9월입니다

왠지 400여 년 전 지금쯤 최락당에서 조선의 선비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으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