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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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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섬진강 옥야백리 농원 이대숙 대표가 전하는 귀농 예찬
남원시귀농귀촌센터 | 2021-07-19 | 조회 1479

<귀농귀촌>
 “정년걱정 없는 귀농, 신의 한수” 


 남원은 예로부터 모든 사람들이 고루 잘 살도록 하늘이 내려준 땅. ‘천부지지 옥야백리(天府之地 沃野百里)’로 불리우 던 곳이다. 그런 남원이 최근 귀농귀촌 1번지로 각광받고 있다.

 최적의 옥토를 보유하고 있는 이점에다가 남원시가 농업기술센터, 귀농귀촌센터를 중심으로 각종 교육과 다양한 정책들을 지원하면서 귀농귀촌인을 적극 발굴, 육성하기 때문이다.

  귀향해서 농사를 짓는 것이 마냥 행복하다는 이대숙씨를 만나 그가 사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 건축자재상 사장님에서‘강소농’꿈꾸는 농부로 변신

  지리산&섬진강 옥야백리 농원 이대숙 대표(65)는 7년 전에 남원으로 귀향, 귀농한 새내기 농부다.

 남원 금지 출신으로 남원에서 유년기,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군대에서 중장비 운전지원병으로 말년 제대하고 나서 1982년에 서울로 올라갔다.

 당시 부모님은 금지에서 농업에 종사하셨지만, 본인은 농사가 적성에 맞지 않아 군대 경험을 토대로 서울에서 건축자재일을 배워가며, 아예 눌러앉았다. 한참 건축 붐이 일 때여서 자리잡기가 수월했다고 한다.

   그렇게 한 10년쯤 열심히 경력과 경험을 쌓다 그는 30대 초반쯤 강서구에 터전을 잡고 건축자재상인 ‘대성종합상사’를 차렸다. 30여년 제법 탄탄하게 사업을 이어온 까닭에‘대성종합상사’는 강서구 지역에 밀집돼있는 건재상 거리에서 선두주자로 부상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송사에 휘둘려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인생의 반을 건축자재사업을 영위, 은퇴시점을 맞으면서 그는 문득 남은 여생을 어떻게 보낼까하고 고민하던 터에 가게를 정리하고 남원으로 내려왔다.

  “어차피 은퇴하면 한적한 지방으로 내려가야겠다고는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귀소 본능이 있었는지 고향 가면 친구들도 있고 마을에 어르신들도 있단 생각에, 귀향을 선택하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2014년 가을 무렵에 덜컥 고향 남원을 내려왔는데 막상 고향에 내려와보니 동창이나 지인들이 다들 바쁘게 사는 게 아닌가. 그런 모습에 자신도 자극을 받아 농사를 짓기로 결심했단다.

 “농사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고향 금지에 아버지가 남겨주신 땅이 있기도 했고 주변에서 양파농사가 괜찮다고 해서 2016년쯤에 무작정 시작했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 농부였지만, 그는 양파 재배시기와 파종시기를 경험하면서 한 겨울 눈 속에서도 ‘녹색’ 빛을 띤 양파 끝 순이 올라오는 생명력에 감탄해 농사의 묘미를 알게 됐다고 했다.

 그때부터 경남양파연구소 이종태 박사 강의부터 양파 교육이라면 열일 제쳐두고, 남원농업기술센터로 향했다.

 # 새로운 농법 창출 노력, 양파 작목반 ‘춘향골 양파 연구소’ 그리고 양파공동선별회 결성


 새내기 농부였지만, 그는 노력하는 농부였다.

  이 대표는 남원농업기술센터에서 진행하는‘작지만 강한 소농업’을 꿈꾸는‘강소농’교육을 두 차례(2017년, 2019년)받으며 농업에 필요한 기술과 양파 전엽 시기, 파종기 등 때에 맞는 농법 등을 배워나갔다.

  다양한 정보를 습득하면서 그는 새 품종 도입이나 모종 육모 구축 등에 대한 새로운 정보들을 농업인들과 공유했다.

  특히 주변 농업인들이 관행농법에 그쳐 불편함을 감수하는 부분을 보면서 남원농업기술센터에 다양한 농법과 기계화부분 등을 문의, 지역농가나 어르신들에게 적용시키는 가교역할을 담당했다.

  “사실 농사는 40-50년 지으신 부분들이 더 잘 지어요. 그런데 관행적으로만 짓다보니 어르신들이 많이 불편하고, 힘들게 농사를 짓더라고요. 그래서 편리한 방법 등을 고안해내고, 가능한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는 방법들을 함께 고민하고 공유했습니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농가들과 상생을 위한 노력도 서슴없이 펼쳐나갔다.

 그 일환으로 이 씨는 자칭 3년 전 쯤 양파 연구소를 만들었다.

 “사실 남원 금지에도 양파농사를 짓는 분들은 많아요. 약 40여 농가가 있는데도 그 흔한 작목반 하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나라도 움직여보자’하고 추진했습니다.”

 그리고는 춘향골 농협 조합장에게 건의, 양파 공동선별회도 발족해서 2019년, 2020년 2년간은 ‘춘향애인’ 꼬리표를 단 금지 양파를 대만으로 수출 선적하는 쾌거까지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올해는 코로나 상황으로 내수만 진행했다.

 사실 주 작목이 양파지만 그는 양파가 6월이면 파종하는 덕에 나머지 기간 동안은 벼, 가지, 옥수수, 배추, 고추 등 연계농업을 펼치고 있다.

 그가 수확한 가지, 옥수수 등은 남원 로컬푸드에 매일 출하되고 있다.

 가을에는 김장배추 행사도 기획하고 있단다. 


 # 그에게 귀농은 신의 한수. 

 “남원에서 귀농하는 거요? 저는 정말 강추합니다. 만족도를 따지자면 숫자로 논할 수가 없고 그저 ‘신의 한수’였다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어요.”

  이 씨는 남원 귀농생활에 대해 이같이 자평하며 무척 만족스러워했다.

  이른 아침에 논이나 밭에 나와서 저녁 7시까지 농업에 치중하다보면, 잡생각 없이 매사에 즐겁고, 긍정적인 생각이 들어 좋단다.

  특히 사회에서 밀려날 걱정 없이 그저 자신이 이룬 대로 정직하게 수확하고 수익을 가져가는 부분 등이 가장 좋은 점이라고 피력했다.

  게다가 귀농 덕분에 건강도 되찾았다고 했다.

  서울에서 사업할 때는 체중이 80kg 이상 나가서 근육에 이상 있을 정도였던 것이 귀농하면서는 농사일에 매달리게 돼 10kg 이상을 감량, 건강을 되찾았단다.

 그러면서 그는 사업할 때 각종 송사에 휘말려 온갖 스트레스에 ‘이렇게까지 해서 꼭 돈을 벌어야 하나’하고 회의감이 들었던 고민도 이제는 그럴 일이 없다고 손사래 쳤다.

 언제든 교육받고 싶으면 기술센터로 향하고, 땀 흘린 보람이 수확과 수익으로 이어지는 기쁨을 만끽하면서 그는 그 사이 농사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고 했다.

 지금도 그는 일주일에 두 번씩 기술센터에서 진행하는 교육에 참가하고 있다. 덕분에 농업 파트너들도 많이 생겼단다.

 자신의 귀농예찬을 늘어놓던 이대숙씨는 귀농이 자신의 삶을 바꾸어놨다면서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는 농부로 살겠다고 했다.

  그는 고향 사랑도 뚜렷했다. 그런 마음은 그의 농장이름을 봐도 엿볼 수 있다. 이름 하여‘지리&섬진강 옥야백리 농원’이 아닌가.

  인터넷 카페활동에서도 남원을 상징하는 광한루 ‘오작교’라는 아이디를 쓸 정도다.

 “남원이 예로부터 천부지지 옥야백리라고 불리는 곳인데도 요즘 사람들은 그 의미를 몰라요. 그러한 축복된 땅에서 농사짓는데 자부심을 느껴보자는 취지에서 상호를 이렇게 지었습니다. 내가 백리는 못 지어도, 백리 흉내는 내보자하고요. 하하하(웃음)”

  그런 마음에 그는 귀농귀촌을 위한 대외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본인 역시 귀농하자마자 귀농귀촌협회에 가입해서 활동했고 2년 이상 귀농귀촌인들과 멘토, 멘티 활동한 것이 계기가 되어 현재는 남원시 귀농귀촌 협의회 이사직도 맡고 있다.

 이 씨는 남원이 농업기술센터가 있어서 명품농업대학 등 각종 좋은 교육 등이 무궁무진한데다 농기계 임대사업소 구축 등 농업에 필요한 여러 제도들이 있어 귀농하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렇게 좋은 귀농조건을 혼자만 알고 있어 되레 미안할 정도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요즘 주변인들에게 은퇴 후 남원 귀농을 적극 제안하고 있다.

 “얼마나 좋아요? 자연에 순응하면서 해마다 땅에서 나는 소산물들을 내다 팔고, 그 가치를 사람들과 영위하는 것이. 서울 살 때보다 정말 행복합니다. 저는 건강만 허락한다면 앞으로도 이렇게 남원 농부로 재밌게 살 겁니다.”

 농사는 ‘하늘이 내린 대업’이라고 했다.

 농부가 된 자신을, 귀농하기 정말 잘했다고 외치는 그가 있어 남원의 농업 전망이 밝다.

 남원=양준천 기자

출처 : 전북도민일보(http://www.do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