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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알리미(동네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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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는 거룩한 일이다
조영천 | 2023-12-14 | 조회 202


어느덧 남원살이 10개월이 되어간다

주생 체재형 가족실습농장에 기거하며

귀농귀촌 프로그램에 따라

농사의 ㄴ도 모르던 내가

고구마, 양파, 감자, 마늘, 배추 등

심고 수확하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개인적으로는 야생화 스승이 권유하여

할미꽃을 채종하여 집 앞에 배드를 만들어

포트에 500개가량을 심어 키운 것이

또 다른 농사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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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씨앗으로 심은 할미꽃은 잘 자라

포트가 좁다고 아우성이었다

내년에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포트보다는

가을에 내다 심는 게 좋다는

스승의 전갈이 있고 나서 마땅한 곳을 찾아 여러 곳을 수소문하고 알아보았으나 쉽지가 않았다 노는 땅도 많고 빈집도 많은 게 시골이라지만 땅을 임대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그렇게 가을이 훌쩍 지나가고

마음이 다급해진 즈음

재능기부로 인연이 된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구례에 친구분의 땅이 있으니 가보라고 연락이 왔다 날은 점점 추워지고 이것저것 가릴 여유가 없어 초초하던 때라 지역이 문제가 될 건 없었다 다행히 남원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주인에게 사정을 말하고 빌려줄 것을 부탁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흔쾌히 승낙을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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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평 정도의 밭은 오랫동안 농사를 짓지 않아 풀이 가슴께까지 커있었다 할미꽃 채종포로는 100평 정도면 넉넉했지만 야생화를 더 키우려면 여유분의 땅이 필요했다 동네분에게 부탁하여 로타리 작업을 마치고 나니 비가 왔고 비가 그치자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할미꽃 심기는 이래 저래 미뤄졌고 11월 중순이 되어서야 옮겨심기를 시작했다 땅은 질었고 흙들은 덩어리 져 있어 속도가 나지 않아 날이 어두워져서야 일을 마칠 수 있었다 다음날은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비는 눈으로 바뀌고 다시 며칠을 기다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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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에서 자라던 할미꽃들을 옮겨 심을 때

중요한 것은 분높이보다 약간 깊게 심고 

상토가 날아가지 않도록 주변 흙을 살짝 덮어준 다음

뿌리에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흙을 다져 마무리하면 된다

섬세한 손길이 필요해 한 포기를 심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얼마 전 심었던 양파처럼 대충 할 수가 없었다

450 포트를 옮겨 심는데 혼자 4일이 걸렸다

도와주겠다는 분들이 있었지만 일정이 맞지 않았고

더 이상 지체 할 수 없어 혼자 작업을 했다

다만 체력이 달려서 하루에 반나절만 일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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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째는 귀농교육일정에 잡힌 

김장용 배추 수확에도 불참하고

다음날 김장 담기에 참석하기 위해 

온종일 무리해서 작업을 강행했다

오후가 되어 남은 포트를 세어보니 60 여개였고

해 질 녁까지 두어 시간 더 하면 끝날 수 있는 양이었다

하지만 온종일 쪼그리고 앉아 

일을 해선지 몸이 힘겨워했다

막바지에는 마치 절을 하듯 무릎을 꿇고 심어야했다

지나가던 동네 할머니가 뭘 심느냐고 물으신다

할미꽃이라 하였더니 

그거 지금 심어도 괜찮을랑가? 하고 가신다


기록을 세울 일은 아니었다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멈출 때를 아는 것도 중요하니

나머진 다음날 심기로 하고 지친 몸을 차에 실는다

돌아오며 생각했다

무언가를 이렇게 집중해서 일했던 게 얼마만인가

나를 무릎 꿇게 한 일이 있었던가?

나에게 농사란 이토록 거룩한 일이란 말인가;;

허나 어디 농사뿐이겠는가

산다는 게 거룩하지 않은 것은 없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