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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알리미(동네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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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의 시간 - 영화를 보고
양미희 | 2023-12-14 | 조회 220

올해, 아니 2023년에는 작지만 작고,

크다면 엄청 큰 소망하나를 가지고

시작을 하였다.

 

채소는 자급자족하기였다.

작년 추수를 마치고 논의 일부분 100평 정도를

밭으로 만들었다.

경제가치로 따지자면 훨씬 손해인지도

모른다.

우리 가족이 10년도 더 먹어야 할

채소 값에 해당하는

수십 대의 흙을 넣어 밭을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우린 기뻤다.

바로 앞에 밭이 생겼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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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1단계로 2월 말에 토종씨앗 모임에 나갔다.

남원에서 대대로 자라 온

다양한 곡식, 채소 등의 씨앗을

몇 년에 걸쳐 직접 채종하여

보관하고 있었다.

대단했다.

채종은 함께 하지 못했지만

이 씨앗들을 심어 다시 대를 잇는 것이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여러 종류의 씨앗을 받아오고

4월엔 여성 센타에 모여 씨앗을 심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 밭에 다양한 작물을 심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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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이 돋는 건 신기하기도 하지만

씨앗에 따라 싹이 나지 않는 것,

자라다 죽는 것,

병이 드는 것 등 쉬운 건 없었다.


가장 먼저 완두콩을 심었는데 자라지 않고

점점 작아지면서 놀놀 해졌다.

결국 죽지 못해 겨우 살아서

정말 씨 할 만큼만 열렸었다.

 

물론 혼자서 쑥쑥 자라 열매 맺는

작물들도 있었다.

알곡을 거두어들이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눈 맞춤과 물과 거름을 주면서

마음을 애태우는 작물도 많았다.

 

정말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완두콩을, 감자, 비트, 양배추, 당근, 부로컬리,

고추, 가지, 방울토마토, 야콘, 땅콩, 오크라, 파프리카,

상추, 루꼴라, 고수, , 바질, 열무, 돌산갓, 홍갓,

가을 무, 가을배추, 고구마, 참깨, 들깨, 쥐눈이콩, ,

호박, 넝쿨울콩, 수세미, 쪽파, 대파, 양파, 마늘,

옥수수, 찰수수, 토란, 피마자까지

 

! 대단하다.

38가지다

잘 된 것도 있고,

이름 만 있던 것도 있고,

토종씨앗을 받기 위해서 심은 것도 있었다.

 

내가 대단하기도 하고

함께 노력해 준 남편도 고맙다.

사실은 남편이 더 힘들었을 거다.

손 발이 되어주고,

무거운 건 다 해주면서

잔소리까지 다 떠 안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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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토종씨앗 밴드에

설수안 감독의 <씨앗의 시간>이라는

영화상영이 예고 되어 있었다.

 

처음으로 농사를 지어 본 나로서는

새발에 피지만

평생을 농부라는 이름으로

살아 온 이들의 1년이라는 시간들,

그리고 끊임없는 노동의 시간들,

그래도 놓지 않고

씨앗의 순환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들의

노고가 보였다.

 

찡하다...

난 그렇게 할 자신이 없었다.

1년도 이렇게 힘든걸...

 

생각처럼 씨앗을 받기가 쉽지 않았다.

씨앗의 순환, 우리 씨앗을 잇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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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원, 사천원 만 주면

무슨 씨앗이든지 구입이 가능한 현실에서

말이다.

 

사라져 가는 우리 씨앗을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수고로움을

아주 조금이나마

느끼는 한해였다.

 

<씨앗의 시간 >의 영화를 보면서

나의 일년이 떠오르고,

평생을 농부로 살아 온 할머니,

등 굽은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