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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알리미(동네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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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룡산성과 선국사
조영천 | 2023-06-30 | 조회 480

무더운 유월 하순

귀농귀촌센터 교육 2일차 프로그램으로 

동학농민운동 역사문화탐방

교룡산성과 은적암에 다녀왔습니다

전날 양파 수확으로 힘들었던 교육생들이

무거운 발을 이끌고 교룡산성에 오릅니다;;

주차장에서 비탈길을 오르니

교룡산성의 동쪽 관문인

아치형의 홍예문이 반깁니다

홍예문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비석들이 줄지어 서있는데

산성을 지키기 위해 순국하신 

비장들을 기념하기 위한 비석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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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룡산성은 교룡산의 산세를 그대로 활용한 

석축산성으로 동문 좌우로 복원 되어있는데

 축성 양식으로 보아

백제시대에 신라의 침입을 막기위해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임진왜란 시 승병장 처영이 고쳐 쌓았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성을 보수하였다고 합니다

홍예문을 지나 가파른 길은

선국사로 이어집니다

비지땀을 흘리며 도착한 선국사

스님은 보이지 않고 절만 홀로 서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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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앞 석탑을 감싸 안은 형상의 배롱나무가

석탑을 보호하는 수호나무처럼 보여

인상적이었습니다

대웅전 아래쪽으로 '보제루'가 자리하고

누각에 올라서자 남원시내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선조들이 왜 이곳에 산성을 쌓았는지

짐작이 되었습니다

잠시 누각에 앉아 교룡산성과 선국사에 대해

해설사님의 해설을 듣습니다

-

정유재란(1597년)때 왜군에 비해 수적으로 

열세인지라 천혜의 요새인

교룡산성에 고을 백성들을 피신시키고 

산성을 이용해 왜군에 대처 하자고 

지원군인 명나라 장수 양원에게 제안하였으나

멍청하고 겁 많다고 핀잔하며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명군과 우리 백성들은 

남원성 전투에 대패하여

만인의총과 같은 불행한 역사를 만들었으니...

그때 현명한 판단을 내렸다면 

역사는 달리 쓰였으리라는 해설사님의 

생각에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시대가 바뀌었어도

남의 눈치를 봐야 하는 일이 얼마나 불행하며

리더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

새삼 되묻게 되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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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산길을 한참을 오르니

드디어 '은적암'터에 도착합니다

이곳은 동학의 창시자

수운 최재우 선생이 은둔하며 동학의 

기초를 만들었던 곳으로

천도교의 성지이기도 하며

독립운동가 33인 중 한 분인

불교계의 백용성 대종사의 첫 출가 성지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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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적암터 옆 언덕으로는 산신단이 있는데

바위가 범상치 않아 보입니다

이곳은 복을 비는 민간 신앙뿐만 아니라

나라가 큰일이 있을 때

나라의 안녕과 백성의 안위를 기원하던

곳이기도 하답니다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왕이나 위정자들이 나라를 돌보지 않을 때

몇몇 깨어있는 선각자와 백성들이

위기에 처한 나라를 위해 목숨까지 바쳐

나라를 구하는데 

남원에도 그 의로운 기운들이 서려있는

여러 곳이 있어

참 대단한 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잘 알려진 분들께도 감사드리지만

이름조차 모르는 수많은 의인들에게

절로 고개 숙이게 되는 

문화 탐방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