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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알리미(동네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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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시골 마을 부녀회장
박선미 | 2023-05-24 | 조회 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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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바래봉자락 시골마을로 이사를 온 지도 어느덧 만 5년이 됩니다. 제가 사는 화신마을은 마을 주차장을 경계로 위로는 원주민과 아래로는 전원주택 단지로 나뉘는 마을입니다. 어쩌다 보니 올해로 부녀회장을 3년째 하고 있습니다. 시골마을 부녀회장은 연봉 15만 원의 박봉으로 그야말로 봉사직입니다. 마을 부녀자들의 꼬임(?)에 넘어가서 얼결에 맡았습니다.

 

1970년도 초반 판자촌으로 조성된 화신마을은 당시 지리산 산골에 살던 주민들을 빨치산 토벌을 위해 마을로 이주를 시켰다고 합니다. 산골에서는 본인들이 일구던 땅이라도 있었겠지만 새로 이주한 마을에는 집만 한 채 있으니 살길이 막막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 당시 어린나이로 마을에 이주해 살았던 분에게 들은 얘기로는,

동창들 모임에 나가면 나이가 다 달라요. 제 나이에 학교 들어간 사람이 별로 없거든요. 누구는 11살에 들어가고 또 누구는 중학교 들어갈 나이에 국민학교에 들어가고 그랬어요. 나도 11살에 학교에 들어갔는데 그나마 들어가기라도 하면 다행이게요.”

 

여자아이들은 겨우겨우 부모님을 설득해 학교에 입학을 하더라도 도시로 식모살이를 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2, 3학년 마치면 주변에서 식모살이 좋은데 나왔다고 얘기가 들어와요. 자식은 많지, 입을 줄이려니까 어쩌겠어. 그 동네 또래들 중 최고 학벌이 국민학교 3학년이었다니까요. 나는 그나마 검정고시로 중학교 졸업은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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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운봉농협 주최로 지리산 둘레길 2구간에 있는 서림숲 공원에서 어르신들 경로잔치가 있는 날입니다. 어제 정리하지 못한 택배를 정리하느라 카페에 일찍 나왔는데 이른 아침부터 마을 어르신들이 모여 계시더라고요. 행사는 930분부터인데 아침 7시부터 한 분 두 분 마을 주차장으로 모이시네요. 누군가 행사장으로 태워다 주기를 기다리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이장은 태워다주지도 않고, 아무도 태워다준다고 하는 사람이 없어.”

어르신 중 몇 분이 역정이 나셔서 큰소리를 치기 시작합니다. (부녀회장) 들으라고 더 큰소리로 말씀하시는 듯해 옷 갈아입고 차키 가져올테니 잠시 기다리세요.’하고 집에 다녀왔습니다.

 

제가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 다툼이 있던 모양인지 난 안 간다’, ‘ 같이 차 안 탄다’, ‘버스나 탈란다’ 10분도 안 되는 시간에 사단이 났던 모양입니다. 어차피 한 차에 모두 태워드릴 수는 없어서 두 패로 나뉜 어르신들을 두 차례에 걸쳐서 행사장에 모셔다드렸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앞마을 시엄마 생각이 나서 전화를 드렸더니 니가 태워다 줄래?’ 하시네요. ‘당연히 제가 모셔다 드려야지요. 얼른 준비하세요.’

시엄마 댁에 갔더니 여기저기 전화를 하고 계십니다. 카풀을 하기 위해서지요. 시엄마댁 옆집에 사시는 어르신께 찾아가 함께 가자고 했더니 잔뜩 기분이 상해서 계시네요.

조합원들만 오라는디 내가 뭐하러 가. 초대장도 안 왔고, 난 안 가고 잡네. 안 갈라네.”

앞마을 이장님이 조합원들만 참석하는 행사로 방송을 하셨던 모양입니다. 과거에 조합원이었던 어르신들 중 대부분이 자녀들에게 승계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최측에서는 조합원을 대상으로 경로잔치를 열어 화합을 도모하고자 했겠으나, 소외된 어르신들 입장을 조금이라도 염두에 두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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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저희 화신마을 이장님은 마을 어르신들 모두라고 방송을 하셔서 마음 상하신 분들은 없는 듯합니다. 다툼까지 어쩌진 못하겠지만요. 부득이 사정이 있어서 못 가신 어르신과 운전해준 부녀회장을 주겠다시며 바리바리 싸갖고 오셨는데 병맥주, 캔맥주, 콜라, 방울토마토 열 개, 박하사탕, 알사탕 등등을 풀어놓고는 떡도 없더라.’ 하시며 다시 역정을 내시네요.

부녀회장 술 끊었습니다.”

아무것도 안 받겠다고 하면 또 역정을 내시겠으니 방울토마토 열 개를 나눔으로 받았습니다.

 

남원은 내일 25일부터 29일까지 5일간 춘향제가 열립니다. 저도 프리마켓으로 참석을 합니다. ‘배짱 좋은 일개미의 맛있는 간식제가 운영하는 부스입니다. 혹시 압니까, 뭐라도 하나 드릴지요. 제가 째째한 부녀회장은 아니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