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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알리미(동네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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民主“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열다.
안동준 | 2023-04-26 | 조회 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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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부산일보 허종 기자                 



김주열 열사의 희생에 2분의 시인께서 쓰신 시를 음미해봅니다.


《고 김주열군 영전에》


행악이 사직을 흔들어도 말없이 견뎌온 백성


가슴가슴 터지는 분노 천둥하는 우뢰인데


돌아갈 하늘도 없는가 파도 푸른 목숨이여


시조 시인 이영도, (1960)




김주열 군의 주검에


보기 위한 동공대신


생각키 위한 슬기로운 두뇌 대신


포탄이 들어박힌 중량을 아시는가?


비인간과 올가니즘(Organism)이 빛은


이위일체의


이 기괴한 신


청마 유치환, 《안공(眼孔, 눈구멍)에 포탄을 꽂은 꽃》(1960)


사진을 보는데 상당히 불편하지만 이 사진은  3월 15일 부정선거와 이승만 독재에 항거하는 시위도중 사라졌다가 눈에 미제 최루탄이 박힌채 4월 11일 마산 중앙부두에 떠오른 당시 17세의 김주열 열사 시신을 부산일보 허종 기자가 찍은 사진입니다.   


“대규모의 봉기에 필요하였던 것은 도덕적 분개라는 공통된 감정을 점화시켜줄 수 있는 사건만 있으면 되었다.” 이 문구의 출처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3.15부정선거에서 시작해  4.19혁명까지 이어진 그 도화선은 4월 11일에 떠오른 김주열 열사의 희생이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걸로 판단되며, 이글을 빌어 열사의 고귀한 희생에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김주열 열사 추모공원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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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커다란 표지석이 있어 지나치기 어려울 정도로 찾기 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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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서 바라본 전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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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승들은 남원과 함양이 만나는 팔랑제에서 이전한 것으로, 

각각(좌에서우로) 남북통일대장승, 민주수호대장군, 소통화합의 여장군으로 이름이 붙여져 있습니다. 안내문에 써있는 장승공원 조성의 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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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화합을 위한 대장정 기념으로 세우다.

동서화합 기원 장승을 모신 뜻은 1960년 3월 15일, 이승만 자유당 독재정권이 저지른 부정

선거에 항거한 마산 8,.15의거에서 김주열 열사는 경찰이 쓴 최루탄에 맞아 시위현장에서 꽃 다운 17세의 나이로 산화했다.

열사는 살아서는 남원(호남)의 아들이었고 죽어서는 파신(영남)의 아들이 되었으며 4.19혁명을 통해 국민의 아들이 되었다. 오늘 우리는 열사가 푸른 꿈을 안고 넘던 이 고개, 전라북도 남원시와 경상남도 함양군을 가르는 팔랑제에 통서화합 기원장승을 세워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열사 정신을 기리고자 한다.


2007년 처음 장송 2기가 비바람에 훼손되어 복원하면서 장승 2기를 추가한다.

2014년 4월 19일 장승 8기를 새로이 제작 설치하고 기존의 3기를 김주열 열사 추모공원에 이전 설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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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쓰여있는데요. 


열사의 추모공원은 곳곳에 공들인 흔적이 역력해보이고 잘 관리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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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기상이 뿜어져 나오는 김주열 열사의 동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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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4월 19일 금지면 옹정리에 개관한 기념관입니다. 기념관 문에 그려진 태극문양의 색깔이 너무 아름다워 따로 찍어봤습니다. 김주열 열사의 묘역 앞에 건립된 기념관에는 열사가 사용하던 책상과 옷, 학용품 등의 유품과 학창시절 사진 10여 점, 학적부 등 93점의 전시물이 있다고합니다. 

김주열 열사는 1960년 3월 마산상업고등학교 1학년 학생으로 자유당 정권의 3·15부정선거 규탄대회에 참가했다가 행방불명된 후 4월 11일 마산시 앞바다에서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시신으로 발견되었고, 이를 계기로 4·19혁명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남원시는 이 기념관을 개관하면서 남원시에서 전라남도 곡성군 경계에 이르는 국도 17호선 17.5㎞를 '김주열로'로 이름붙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열사의 묘지는 총 3군데로, 마산 3·15묘지와 서울 4·19수유리국립묘지, 그리고 열사의 고향인 남원에 묘지가 있습니다.  묘지가 3개 있는 분은 지구종말때 까지도 없지 않을까요? 그만큼 김주열 열사의 희생은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의 시작을 알리는 강렬한 신호였습니다.


이 세상에 묘지가 세개 있는 분은 김주열 열사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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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의 묘지 입니다. 비문에는 젊은 나이에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열사의 삶이 간략하지만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방문하신다면 비문을 읽어보시면 열사를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될것으로 생각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던 이유가 뭔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만, 다시한번 김주열 열사의 희생에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