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지역알리미(동네작가)

지역알리미(동네작가)

보절면 신파리의 신흥서당을 소개합니다~!
권태경 | 2022-10-31 | 조회 1028

안녕하세요~ 시골딸내미입니다 :-)

잘 지내셨나요?

저는 가을일을 하느라 엄청 바쁘게 지냈답니다 ㅜ_ㅜ

올 한해의 고생을 보답받는 계절이라고나 할까요? 호호호


오늘은!

보절면 중심지인 신파리 내에 있는 신흥서당에 대해 소개해드리려고 해요.

그래서 제가 직접 신흥서당을 다녀왔지요~!


다산마을을 등지고 바라본 신파리의 모습이여요.

어때요? 보절면도 이제 가을을 제대로 맞이한 모습이죠? 허허


신파리에 있는 신흥서당을 가는 길은 다양한데,

저는 뒷골목쪽으로 향하는 길을 택했어요~



오잉? 이게 뭐죠?

여기를 자주 오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예전에 지나갔을때는 없었는데!


남원시 향토문화유산 유형문화재 제4호 '남원 신파리 석조여래입상 125m'라고

적혀있네요!

으음.. 이게 뭐죠?

일단.. 가는길이니 한번 가볼까요?



오긴 왔는데 125m정도 오니 또 이게 있네요..

남원 신파리 석불 등?

다음엔 이것에 대해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겠네요!


아무튼!

여기 옆에는 바로바로 

우리가 오늘 가보려했던 신파리의 신흥서당입니다!



어때요? 오래된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웅장하지 않나요?

앗 ㅋㅋㅋ 제 그림자도 함께 찍혔네요!


여기는 신흥서당 입구인 것 같아요!

좌물쇠로 잠겨있어서 들어가보지는 못했는데 이따 슬쩍 보여드릴게요~


신흥서당은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신파리에 있었던

조선 말기 향촌 사회를 근거지로 하여 설립된 사립 초등 교육 기관이라고 해요.

신흥서당은 1894년(고종 31)에 남원도호부 보현방 신흥마을에서 마을 유지들에 의해서

설립되었으며, 마을 유지들로 운영되었어요.

여기에서는 주로 사자소학과 사서삼경 및 명심보감 등의 유학을 가르쳤다고 해요.



들어가보지 못하니.. 슬쩍 담벼락 넘어로 살펴보았어요. ㅋㅋ


신흥서당이 위치한 보절면 신파리는

원래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남원군 보현면 신흥리가

주변 여러마을과 함께 보절면 신파리에 편입이 되면서 형성된 마을이라고 해요.

신흥마을은 1717년 안극량의 아들 안여가 분가하여 정착한 후

처음으로 씨족 마을이 되었으며,

인재 교육과 미래 일꾼 양성을 위해

향촌 초등교육의 필요성이 제기가 되었고,

그 이후 마을 주민들의 열렬한 호응속에서 사당이 설립되었다고 해요!


신흥마을에는 훗날 순흥 안씨 일가가 추가로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는데,

마을 동편에 신흥사라는 사찰이 존재하고 있었기에 신흥마을이라고도 불렸다고 해요.



조선시대를 거쳐 구한 말에 설립된 신흥서당은

주로 구한말 외세의 간섭이 심한 상황 속에서

한문과 유학보다는 역사의식의 학습이 많이 이루어진

민족 교육 현장으로 발전하였으나,

이를 탄압하는 일제에 의해 휴업을 당하기도 하였다네요 ㅠㅠ


신흥서당은 1894년에 설립하여 일제강점기인 1940년까지 운영되었다가

민족의식이 강하다는 이유로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쇄될 때까지

약 50여 년 가까이 교육활동을 지속하였다고 해요!


신흥서당의 훈장은 많은 지역 향촌의 명망 인사들이 담당하였으며,

특히 운사 박태섭, 화사 임철규, 국찬 이교성, 계석 이원형 등이 활발이 활동하였다네요!


지금은 신촌서당의 서재 일부만 좀 남아있다고 해요ㅠㅠ


구한말의 역사적 급변기에서 민족 교육의 요람 역할을 해온 신촌서당에서는

많은 후학들이 배출되었으며,

이후 남원시 보절면 신파리 일대를 학문과 문화 예술의 현장으로 바꾸어 놓는데

가교 역할을 하였다고 해요!



이렇게 담벼락이 허물어져있어 몰래 들어가보고 싶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아서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네요 허허


신흥서당, 지나치기만 했지 이렇게 깊은 역사가 있는지 몰랐어요!


또한번 보절면의 매력에 푹 빠져브렀네요 홍홍

여러분들도 보절면에 오시면 꼭 와보시길 추천해요!


그럼 이제.. 저는 벼베러 가야하니 이만~ 홍홍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