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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알리미(동네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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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절면 괴양리 개신마을을 소개합니다~!
권태경 | 2022-10-31 | 조회 1073

안녕하세요~ 시골딸내미입니다.

점점 추위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서둘러 가을일을 끝내고, 겨울맞이를 해야하는데!

몸이 예전같지 않아 괜히 조바심이 나네요ㅜ_ㅜ

예전에는 밤샘일에도 끄떡없었는데.. 지금은 10시만 되어도 눈이 침침해지고 막..

너무 슬픕니다ㅜ_ㅜ


그나저나, 오늘은 보절면 괴양리에 있는

개신마을에 대해 소개해드리려고 해요!

그럼 이제 가볼까요?



보절면 괴양리 개신마을! 표석 보이시나요?

괴양리, 즉 버스정류장에서 오른쪽으로 바라보면

이러한 표석이 있는데

이 표석을 따라 윗 길로 쭈욱 올라가시면 개신마을이 나옵니다 :-)


개신마을에 대해 잠깐 소개해드리자면,

개신마을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대립하던 삼국시대에

시국이 혼란하여 피난의 적지를 찾아 씨족 단위로 정착하던 차에

부안김씨와 광주안씨가 

산동면과 보절면의 경계인 구라치에서 만나

부안 김씨는 산동면 목동마을에 자리를 잡았고,

광주안씨는 보절면 괴양리에 자리를 잡았다고 해요.

그 이후 조선 중기에 진주 형씨가 들어왔고,

다시 100년전에 파평 윤씨가 또 터를 잡아

이곳을 신촌이라하고 본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해요.



개신마을은 개양마을과 신촌마을을 합하여

개신마을이라고 한데요!


개신마을은 처음에는 빈터라 불렸는데,

그 이유는 약 500여 년 전 백중날 아침 뜻 밖의 폭우로

마을이 완전히 침수되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해요.

그 이후 다시 주택이 들어설 때 지금의 자리로 옮겨

개양이라 이름을 고치고,

1976년 1월에 개양과 신촌을 합쳐

개신이라고 명명하여 현재에 이르렀다고 하네요~



이 사진은, 

개신마을 위에서 바라본 개신마을의 모습이여요.

저~ 멀리 천황봉이 우뚝 선 모습과 마을의 조화가 너무 좋은 것 같아요.


그나저나 2018년에는 파평 윤씨 집성촌인 '남원 신촌마을'의 유래비를 건립하였다고 해요.

마을의 유래와 역사를 보전하고 자손들에게 이를 알리기 위한 유래비를 건립했는데,

개신마을의 신!촌마을은 300여년 전 태조왕건과 함께 고려를 창건한

개국공신으로 알려진 태사공 윤신달의 28세손 윤달후가 정착하면서 

이 마을이 조성이 되었다고 해요.

신촌마을은 한때 25가구 종인 120명이 

선산과 선령을 모시며 서로 상부상조하고,

파평윤씨 고정공파 자직공 요람으로 향촌을 이룬 마을이라고 해요.


그러나 세월이 지나 급속도로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선령을 받들던 종인들도 타지로 뿔뿔이 흩여졌고,

결국 명목만 남아있는 마을이 되었는데요.

이에 파평윤씨 소정공파 사직공 용모회 윤두근 회장은

각지의 종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성금 1,200만원을 활용하여

신촌마을에서 일생을 살아온 35세손 윤명한 옹을 중시으로

유래비를 건립하였다고 해요.


파평윤씨 소정공파 사직공 36세손 윤영근 옹은

"시대의 변천으로 인해 종인들이 각지로 흩어져 선산과 선령을 받들어 모시지 못한

적막한 마을이 되었으며, 이제 마을의 등불은 어두워졌지만 이는 시대의 흐름에 의한 소치이며,

인위적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안타까운 일이다.

하여, 문중의 아쉬운 종사를 영원히 기리고자,

늦은 감이 있으나 여기에 유래비 그 내력을 간략하여 명각한다"라고 밝혔다고 합니다!


(사실 그 유래비를 찾고싶어 마을을 계속 돌아다녔지만.. 찾지 못해서.. 

너무 아쉽습니다ㅜㅜ)



개신마을에서 윗 논으로 향하는 길인데,

햇볕이 너무 좋아서 살짝 찍어보았어요. 허허허허허허허.



이렇게 메타세콰이어도 조화롭게 자리 잡고있고..

오늘 하늘도 멋찌고..

개신마을.. 오늘 날잡길 잘했네요.

정말 예쁜 마을이고, 뿌리가 깊은 마을이지만

오늘따라 더 예쁘고, 더 깊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요?


여러분들도 보절면에 오시면

개신마을 한번 둘러보고 가시면 좋을 것 같아요.

홍홍


그럼 이제 시골딸내미는 이만~!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