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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알리미(동네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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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잡록&의충사를 아시나요?
조래용 | 2022-05-31 | 조회 1924

안녕하세요!!알루입니다!!오늘은 이백에 이런곳이 있었나?

이백의 초입을 다리를 건너면 꼬부랑길을 5분정도 달리면 위치해 있는

'난중잡록'에 대해 포스팅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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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잡록의 위치는 아래 주소입니다!!!네비를 치시면 금방 찾으실수 있으세요!!

난중잡록

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 초촌길 110-9

의충사

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 초촌길 110-9

꼬부랑 꼬부랑한 길을 따라 운전을 하다보면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라는 멘트와 함께 의충사를 찾을수 있었는데요

한적한 초촌리 초동마을과 함께 위치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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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입부터 의리 의리하죠..???


아쉽게도 내부는 들여다 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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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게 꽁꽁 잠겨있었어요

너무 아쉬워서 돌담을 넘어 사진을 찍어보려다 그건 나쁜행동이니 돌담밖에서

전경을 담아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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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충사는 조선 중기의 무인이면서 의병장이였던 조경남의 묘지와 함께 난중잡록을 기록한 곳입니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조경남은 1579년(선조 12) 10세에 유인옥에게 입문해 글을 써 남들을 놀라게 했으며 13세에는 난리를 예견하여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18세에는 조헌의 문하로 들어가 의리와 도덕을 터득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는 군문에 들어가려 했으나 뜻대로 하지 못하고, 1598년(선조 31) 29세에 전라도병마절도사 이광악 막하에서 명나라 군대와 합세하여 금산·함양 등지의 왜군을 무찔렀으며, 1608년(선조 41) 39세에는 향시, 양장에, 1614년(광해군 6) 45세에는 삼장에 합격하는 쾌거를 거둔 대단한 인물이였더라구요!!

그러나 광해군의 어지러운 정치를 비난하고 벼슬길에 오르지 않고 인조반정 후 1623년 54세에 겨우 진사에 등과했으나 세상과 인연을 끊고 방장산 용추동에 별장을 짓고 산서병옹이라 자처하며 세상에 나오지 않았으며 삼학사의 심양순절소식에 충의를 읊은 인물입니다. 조경남은 1641년(인조 19년) 세상을 떠났고, 초동마을에 묘와 의충사가 위치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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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남이 집필한 난중잡록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중심으로 하여 1582년 12월부터 1610년 2월까지 저술한 것이고,

제1권이 1582년 12월부터 1592년 7월까지,

제2권이 1592년 8월부터 1593년 6월까지,

제3권이 1593년 7월부터 1598년 12월까지,

제4권이 1599년 1월부터 1610년 2월까지의 분량의 4권 2책으로

이후 저자가 광해군과 인조시기 경험한 사건들을 속잡록이라 하여 난중잡록에 덧붙여 기록하였는데

속잡록은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을 중심으로 하여 기록한 것으로

제1권이 1611년 1월부터 1621년 12월까지,

제2권이 1622년 1월부터 1628년 11월까지,

제3권이 1628년 12월부터 1635년 12월까지,

제4권이 1636년부터 1638년 12월까지의 분량이다.

총 4권 2책으로 난중잡록과 속잡록을 합쳐 총 8권 4책으로 구성된

임진왜란기를 중심으로 조선 중기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당쟁, 외교, 군사 등을

총체적으로 기록하여 남긴 사료로 그 가치가 매우 높은 일기라고 합니다!!!

그리고 의충사 뒷편으로 보시면 조경남의 묘지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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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단을 통해 올라가면 조경남 선생님의 묘소를 볼수 있었지만

확대해서 보시면 아시지만 충성냥 한마리가 계단을 지키고 있어 올라가 보진 못했어요

다들 시간이 되신다면 한번쯤 방문 추천드려요!!

오늘의 포스팅은 여기서 마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