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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알리미(동네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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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마을(성리마을 소개)
강상민 | 2022-05-28 | 조회 1930

안녕하세요? 동네작가 강상민입니다.

아막성 아래 자리 잡은 마을이라 하여 성리(城里)라 하였으며성 가까이 있는 높은 곳에 위치한 마을을 상성(上城), 아래 위치한 마을을 하성(下城)이라 하였습니다상성은 흥부의 발복지 마을로 입증되어 흥부마을’ 혹은 흥부발복지마을로 더 널리 알려져 있어서 오늘은 흥부마을을 포스팅하고자 합니다.


원래 이 마을은 남원시 아영면 소재지의 북쪽에 위치하며 2007년 기준 면적은 368.5이며, 20141231일 현재 총 65세대에 131(남자 61, 여자 70)의 주민이 살고 있고며,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주요 소득원은 쌀, ·고사리·더덕 등의 산나물, 고랭지 채소이며 최근 포도 재배 농가가 증가하고 있다. 토지 이용은 논이 54.8, 밭이 35, 임야가 260입니다.


동네 입구에 들어서면 흥부마을 입구 표지판과 우애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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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입구에서 5분정도 걸어서 올라가면  흥부가 물을 길어 마셨다는 흥부참샘이 있습니다. 물을 마셔보니 일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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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위로 조금 올라가면 흥부빈집 터가 있고 놀부가 박을 타는 설명도 적혀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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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에서 3분정도 더 올라가면 박춘모 묘와 묘지에 대한  표지판 설명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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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성리마을은 운봉군 북하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일대리·구상리 일부와 신지리 일부가 병합되어 성리가 되었고 백두대간을 경계로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과 접하고 있는 해발 500m의 고산 지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유적으로는 남원 지역 문헌 기록상 최초로 등장하는 아막성이 남아 있고 실제 아막성 일부가 발견되었습니다. 아막성은 테머리 산성이면서 그 규모가 대단히 크고 성의 윤곽도 드러나 있어 보존과 복원의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되며, 아막성 안에는 운성암이라는 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성리에는 흥부전(興夫傳)에 나타나는 지명과 일치된 곳이 많이 남아 있다. 또한 흥부 발복지로 입증되어 매년 음력 99일에 흥부터울림 행사를 개최하고 있으며, 춘보제(春甫祭)라 하여 흥부를 기리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성리에는 흥부전에 등장하는 지명이 마을 곳곳에 남아있다. 허기재, 고둔터, 새금모퉁이, 흰묵배미 등의 지명은 고전에도 등장했던 지명이다. 지금은 길 양쪽으로 감자농사가 한창인 '허기재'는 허기에 지쳐 쓰러진 흥부를 마을 사람들이 도운 고개라고 전해진다. '고둔터'는 고승이 가난에 시달리고 있는 흥부에게 잡아 준 명당으로, 흥부는 이곳에서 제비를 고쳐준 발복집터이다.

 

실제 '고둔'이라는 지명은 곳집(창고)이 모이는 터, 즉 부자가 되는 터라는 뜻이다. 이곳은 장수군 번암면으로 넘어가는 짓재 고개마루에 높다랗게 자리잡고 있으며 마을의 산자락과 이웃 논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사금모퉁이'는 사금꾼들이 금을 채취하던 곳으로, 흥부가 이곳에서 금을 주워 부자가 된 것이 아닌가 추측하기도 합니다. 한편, '흰죽배미'란 장소는 흥부가 부농이 된 후 은인들에게 보답으로 주었다는 논으로 전해지며 흥부아내가 이웃들이 흰죽을 먹고 살아나서 흰죽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합니다. '노디막거리'는 흥부가 부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부가 화초장을 지고 건넜다는 개울로 추정되며 지금은 콘크리트로 덮여있지만 개울가에는 억새가 무성히 자라고 있다

이곳저곳을 거닐면서 형제 간의 우애, ()와 빈(), 성공한 이후에도 어려웠을 시절 함께 했던 이웃을 잊지 않은 겸손과 나눔의 정신을 되돌아 봄직합니다.

이상으로 포스팅을 마칩니다. 6월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