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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알리미(동네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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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심재
이민주 | 2023-10-25 | 조회 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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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심재 안내

-주소: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 내호곡2길 19(호곡리)

-여는시간:오전 9시

-닫는시간:오후 7시

-휴관:매주 월요일

-국가 민속자료 149호 문화재, 원불교 성지

-주차:맞은편 주차장



남원 몽심재 고택은 조선 정조(1766~1800) 순조(1800~1834)시기 전북 상류층 살림집의 전형을 보여준다. 고택을 둘러보면 당시 건축물의 원형과 아름다운 정원의 조화로움에 눈이 부실 정도이다.

건축물은 소박한 형태를 지니고 있지만, 5월 햇살이 내리고 있는 정원과 어울려 꽤 호사스러워 보인다.

고택 뒤에는 산이, 앞에는 낮은 구릉이 있다. 여러 채의 건물이 산자락의 경사면을 따라 앞뒤로 높이를 다르게 하여 담장 안에 세워져 있다. 대문에 들어서면 마당이 넓게 펼쳐져 있는데 마당의 끝부분에 축대를 ᄊᆞᇂ고 그 위에 사랑채를 지었다. 사랑채 중문을 지나면 안채가 있는데 아래 공간을 외양간으로 사용할수 있도록 받침을 높게하여 지었다. 건물들이 높이 솟아 있음에도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멋과 그윽한 정취를 자아낼 만큼 뛰어난 조형미를 보여 준다. 이 고택은 원형이 대체로 잘 보존되어 있어 조선시대 호남 지역 양반가의 전형적 주거 양식을 볼수 있다.

이 고택은 특이하게도 사랑채에 팔각기둥을 사용하였고 아랫사람이 거주하는 문간채 동쪽에 대청을 한칸 들였다. 이 대청은 일하는 사람들을 배려한 공간이었다.

철쭉과 조경수들이 어우러져 고택의 정원을 더욱 아름답게 꾸며주며 시대의 넉넉한 삶을 잘 표현하고 있다. 

입구에는 하마비라는 동그란 돌이 있는데 말을 타던 시절 일반적으로 하인의 등을 밟고 내려왔는데 몽심재에서는 이 하마비라는 돌을 놓아 바위를 밟고 내렸다고 한다. 입구에서부터 사람에 대한 배려가 느껴진다.

한양에서 오가던 많은 선비들을 접객하며 타인을 배려하고 신분이 낮은 아랫사람과 여자들을 위한 배려가 집안 곳곳에 남아있다. 집이 높은 축대 위에 지어진 이유는 뒤편의 안채가 보이지 않게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함이란다. 풍수지리적으로 몽심재 터가 우리나라에서 꼽히는 명당이라 매해 많은 풍수지리 연구가들이 찾는다.

이러한 터가 좋은 몽심재는 2명의 재상과 55명의 대과 급제자를 배출했다고 한다.

여성들의 공간인 안채는 ㄷ자형이고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아래에서 잘 보이지 않는 위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