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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알리미(동네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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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잘 살고 갑니다"
조영천 | 2023-06-30 | 조회 579

유월 마지막 주

여느 해처럼 장마가 시작되고

비가 오락가락한 사이

잠깐 틈을 내어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로

'혼불'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그다지 쾌청한 날씨는 아니었다."

로 시작하는 최명희 작가의『혼불』은

한국 대하소설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데

오늘 날씨도 우중충하여

왠지 숙연한 느낌마저 들었다

혼불문학관은 

소설의 중심 무대인 노봉 마을을 

남원시가 문학마을로 조성한 것으로

작가의 문학정신과 작품에 표현된 남도문화를 

소개하는 문화콘텐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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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매면 서도리 노봉 마을 혼불문학관)


한옥으로 된 두 채의 전시관에는 소설의 줄거리를

디오라마로 구현, 소개하고 있다

(Diorama: 대상을 같은 크기 또는 일정한 비례의 

크기로 축소하여 실물처럼 모형화한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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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원의 장례식, 강모 강실의 소꿉놀이, 액막이 연날리기, 인월댁 베짜기, 강수 영혼식, 춘복이 달맞이, 청암부인 장례식 등)


전시실 초입에는 작가가 쓰던 만년필, 

자필 원고와 지인에게 보낸 편지 등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작가의 집필실도 재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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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고를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다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생애를 기울여 

 마디  마디 파나가는 것이다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어도 풍화 마모되지 않는 

모국어  모금을  자리에 고이게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우리 정신의 기둥 하나 세울  있다면.

-최명희


포스터의 글을 보며 우리 민족의 근원에 대한 

작가의 고민과 치열한 작가 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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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문학관 옆에 위치한 청호저수지)


그녀는 전주에서 태어났지만

부친의 고향이자 자신의 뿌리라고 생각했던

남원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졌던 모양이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남원 여자라고 부르지요

모두가 소설혼불덕분이죠.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부분 남원 말을 쓰는데 

말씨가 무척 애정이 가요. 전라남북도와 경상도 

접경 지역인  데다 지리산을 끼고 있고 평야가 있지요

그런 지리적 여건 때문에 여러 지방말이 

한데 섞이고 어우러져 독특한 억양을 만들어내지요

판소리의 근원지이기 때문에 가락이 있고 

하나하나에 맛이라는 게 있어요.”


그랬었다

아주 오래전 '혼불'을 읽으며

당시의 세시풍속과 문화사를 느낄 수 있었고

무엇보다 소설 속의 구수한 사투리에

매료되었던 모양이다


무신 노무 인생살이 살아서도 눈물바람

죽어서 귀신이 되야도 눈물바람

오나가나 울고 우는 굿이구나

기양 울어부러라 울어부러

애껴뒀다 가뭄에 쓸라고 참겄냐

오짐도 누고 나면 씨언허고

눈물도 쏟고나면 개법지

울고 자픈거 울면 울임에도 체험게

허기사 . 울라고 굿허제, 웃을라고 굿헌다냐

에이고 시언하다. 한참을 참었네 기야 


돌아오며 생각했다

남원에 깃들어 남원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혼불'을 다시 읽어야겠다고...


집으로 돌아와

서랍속에 잠자던 그녀가 사용했던 것과

같은 잉크병과 만년필을 꺼내본다

같은 도구로 어떤이는 걸작을 만들고

또 어떤이는...;;


'혼불'은 미완으로 끝났으나

작가가 숨을 거두기 전 마지막 말이 

가슴을 울컥하게 만든다


“‘혼불하나면 됩니다...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참으로 살고 갑니다.”

.

.

.


참으로 잘 사는건 무엇일까?

깊은 고민이 시작되었다